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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25/05/30 21:17:49
Name 밥과글
Link #1
Subject [일반] 늙어서 곱씹는 연애의 추억
청춘에 대한 기억이 많지 않다.

공부를 열심히 한 것도 아닌데 친구들과 당구장이나 PC방에 몰려다닌 것 따위의 자잘한 추억도 없으니 그야말로 허송세월을 보냈다.  학급에서 소외되진 않았으나 내성적인 성향에 심한 외모 컴플렉스가 맞물려 적극적으로 친구들과 어울린 기억이 없다.  하교 후 노래방에 가자든가,  방학 때 바닷가로 놀러가자는 식의 고마운 제안들을 모두 거절하고 집구석에 처박혀서 무얼 했던건지?

만화방을 들락거리며 장르 소설이나 만화책 따위의 서브 컬쳐를 탐닉하고 그마저도 손에 잡히는 게 없을 때면 철지난 영화를 빌려보던 것이 얼마 안되는 내 10대의 추억이다.  보통 성공한 예술가나 창작자들은 이런 아싸 골방 생활을 통해 매니아로 거듭나고,  자기 취향을 듬뿍 담은 창작물을 만들어내 칭송 받던데.

안타깝게도 내가 눈으로 섭취한 문화들은 그대로 똥이 된 모양이다.  그렇게 푹 빠져서 본 작품 중에 기억나는 게 별로 없다.  독후감이라도 써야했을까?  일기나 메모 같은 자신의 기록이 중요하다.  나 어릴 때도 흔하게 들리던 조언이었는데. 어른들 말씀에 틀린 게 하나 없다.




무성 영화처럼 기척 없이 흘러갈 것 같았던 내 젊음에 잠깐의 번뜩임을 남긴 것은 몇 안되는 연애의 기억이다.  숨 쉬듯이 연애하는 사람들이 보면 초라한 부스러기처럼 보일,  그야말로 손가락에 꼽을 수 있는 숫자의 여인들.  

못생긴 외모와 내성적인 성격으로 여자에게 말도 못 붙이던 나를 연애 시장으로 밀어붙인 것은 전역 직후의 용솟음 치는 에너지였다. 나름 빡세다는 전방 사단에서 무사히 근무를 마친 '군부심' 에다, 강원도 산악행군으로 다져진 불끈불끈한 체력이 미처 흩어지지 않은 23세의 강건한 신체는 불가사의한 자신감으로 나를 껄떡거리게 만들었다.

대학가에도 전역한 복학생 선배가 여자 후배들에게 잘 껄떡거리는 이미지가 좀 있다는데, 나 자신을 돌아보면 썩 근거 없는 이야기 같지 않다.

본능적으로 머리를 굴린 끝에 내가 여자를 꼬시기 시작한 것은 인터넷 세계였는데,  촌놈 찐따에다 외모에도 자신이 없는 내가 얼굴을 공개하지 않고 이성과 대화할 수 있는 '채팅'에 이끌린 것은 파리가 생선에 꼬이듯 당연한 귀결이었다.

때는 바야흐로 2010년대 초반,  스마트폰이 보급되며 인터넷 문화가 휴대폰 앱으로 흡수 통합되기 시작한 과도기였다.  '세이클럽'  '네이트온 채팅방' 따위의 2000년대를 풍미한 채팅 공간이 화석처럼 말라붙어 근근히 유지되고,  지금의 세련된 데이트 앱과는 다른 투박한 만남 어플리케이션들이 유행을 탔다 금방 사라지기도 하던 춘추전국시대.

지금은 데이트 앱과 SNS를 통한 만남 문화가 너무 일반화되어 상대방의 외모와 스펙 등을 보고 번개 같이 결판이 나지만, 당시에는 나 같이 못난 사람도 말이나 붙여볼 틈이 있었다.  상대방 사진을 스윽 살펴보고 DM에 답장을 해주는 것이 아니라,  일단 가벼운 대화와 사교가 오고간 후에나 조심스럽게  "사진 좀 보내주실 수 있으세요?" 라는 말을 건넬 수 있었던 시절이었으므로.

'가벼운 대화와 사교'를 최대한 질질 끌며 발악해보았지만 사진을 보낸 뒤에 긍정적인 반응이 돌아온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  태생이 못생긴 건둘째치고,  소위 '자기 관리'가 전혀 되어 있지 않은 남자를 누가 환영해 줄 것인가.  후줄근한 체크무늬 셔츠에 스포츠 머리를 한 23살 예비군 아저씨를.

다행히 그 시절엔 '외모로 사람을 평가해선 안된다' 는 격언이 신기루처럼 남아 있었다.  지금이라면 '가식적인 소리다' 라며 비웃음 받을 그 상냥한 문구를 가슴에 간직한 채 실천하려고 노력하는 천사 같은 여자들을 제법 만났다.  내 사진을 보고도 실망한 티를 내지 않으며 '외모 외에 다른 매력이 있을지도 몰라' 라는 순진한 희망을 안고 약속 장소에 나왔던 여인들.

물론 다 실패했다.  나는 외모 외에도 딱히 매력이 있는 남자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친절하고 예의바른 사람들이었다.  그 존중어린 거절 덕분에 나는 상처 받기는 커녕 여자 앞에서 극도로 긴장하던 버릇이 완화 되었다. 픽션이나 커뮤니티 경험담 따위에서 들려주던 기상천외한 실연담과는 달리, 거절 당하는 것은 두려운 일이 아니었던 것이다.  세상엔 상대방을 배려해 줄줄 아는 사람이 많다.  

물론 결국엔 무례한 사람도 마주하게 되는 법이지만,  좋은 사람들을 여럿 만난 뒤에 싸이코 같은 여자를 만나게 된 작은 행운이 나에게는 있었다.  순서가 반대였다면 영원히 집구석에 숨었을 것이다.  초보자 때 만나는 성숙한 배려란 얼마나 큰 축복인지.

여러 번의 실패를 겪은 뒤 나는 전략을 수정했다.  '외모 꾸미기' 같은 건설적인 방향을 잡았다면 일이 좀 쉬웠으련만. 나는  '목표 하향' 이라는 전략을 선택했다.  군대에서 말하던 '치마만 두르면 된다' 는 표현과 비슷하지만 이건 너무 저급하다.   원나잇을 원하는 게 아니고 편하게 밥 먹고 영화라도 볼 '이성 친구'가 필요했다.  계속 차이다보니 외로움이 컸다.

어쨌든 결론은 연애 시장에서의 내 위치를 겸허히 인정하고 상대방의 외모 역시 아예 안보겠다는 선언이었는데. 온라인 세상에서는 못생긴 여자를 찾는 것도 일이다.  말했듯 당시 과도기에는 상대방 사진을 쉽게 찾아볼 수도 없었을 뿐더러, 사진이 못생겼냐 보다도 여자가 진짜 스스로를 못 생겼다고 생각하는지가 더 중요했다. '나 예쁜데?' 라고 생각하는 여자에게  '난 얼굴 안본다' 고 어필해봐야 역효과만 날테니까.  

여자 꼬셔보겠다고 온라인을 들쑤셔댄 그간의 경험 덕에 나에겐 나름대로 특기가 생긴 상태였다.  채팅 말투나 계정에 남긴 글귀 등을 통해 상대방을 파악하는 것이었다.  정말로 자신이 못 생겼다고 생각해 자신감이 없는 여성은 상당히 방어적인 태도를 보인다.  프로필이 물음표로 되어 있으며 대화에 호응을 잘해주지만 진도가 모호하다.  마치 만나자는 말이 안 나오길 바라는 것처럼.  

그렇다. 사진 보내달라는 소리가 안 나오도록 질질 끌던 나랑 똑같다. 동병상련이다. 그럼에도 연애의 꿈이 있으니까 이성과 대화를 하려는 것일텐데. 두려워서 아예 단념하고 채팅으로 썸타는 느낌만 즐기다가 나가 버리는 유형이 많아 이쪽도 꼬시기 쉬운 게 아니다.  

연애, 원나잇 같은 부담스러운 만남은 가지지 말고 편하게 같이 밥이나 먹자.  사귈 거 아니니까 네 외모나 스펙 같은 거 알려줄 필요도 없다. 몇 살이냐? 편하게 오빠 동생으로 만나자. 너 뚱뚱하다고? 나도 못생겼는데 뭔 상관이야.  그냥 밥이나 사줄게. 경험 삼아 나와라.  '프렌들리 전략' 으로 바짓가랑이를 붙들고 늘어진 덕에 드디어 약속을 잡았다.  

축약해서 엄청 껄떡인 것처럼 보이지만, 만남을 강요하지 않고 편하게 연락을 지속한 것이 주효했다고 자평한다.

추운 날씨, 코트 한 벌로 후진 나의 패션을 둘둘 숨기고 약속 장소로 향했다.  연하인 그녀가 기특하게도 내가 사는 동네까지 오겠다고 말했다. 기온 탓인지, 오랜만에 성사된 약속 탓에 긴장한 것인지 몸이 계속 떨렸다.  

메시지를 실시간으로 주고 받으며 이동 상황을 체크하다 보니, 약속 장소에 도착한 지 30초도 안되어 그녀가 버스에서 내리는 모습이 보였다. 숨이 막혔다.  제법 시골인 우리 동네에, 그 중에서도 후미진 정류장에, 약속 시간에 맞춰 내릴 여자는 내가 채팅으로 꼬신 그 여자애 밖에 없었다.

  '못생겼다면서?'

계속 자기 못 생겼다면서, 뚱뚱하다면서 손사레를 치던 상대였다.  겸손으로 자기를 낮추던 여자들과 달리 대화하는 태도부터  너무 수줍어서 의심조차 안했었다.  
검정색 가죽 치마와 힐,  딱 달라붙는 흰색 이너를 받쳐 입고 가죽 재킷을 걸친 단발머리의 그녀는 너무 예쁘고 날씬했으며,  좀 더 솔직히 말하자면 엄청 놀게 생겼다. 이 여자가 학창 시절에 일진이 아니었다면 우주의 배신이라고 해도 좋을만큼 '그렇게' 생겼다.

짧은 시간동안 온갖 상상이 떠올랐다.  채팅으로 나 같은 찐따나 아저씨들을 꼬신 다음에,  으쓱한 장소에서 '남자친구' 패거리가 우르르 나타나 돈을 뺏는 범죄를 뉴스에서 본 적이 있었다. 진지하게 그런 생각을 떠올릴 정도로 상황이 납득이 가질 않았다.

'저런 여자가 나를 왜 만나지?'

만난 뒤에 초라해지는 느낌이 싫어 꿋꿋하게 내 모습을 밝혀 왔다.  차일 걸 알면서도 사진 보내달라고 하는 상대에게 항상 못생긴 나를 보여주었다. 이번에는 상대방도 외모에 자신이 없다고 해서, 편하게 만나자는 의미에서 따로 사진 교환을 하진 않았지만 내 외모를 충분히 전달했다고 생각했다.

통통하고 방실방실한 아이가 대충 파카나 입고 나올 줄 알았는데,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예쁜 여자가 한껏 꾸미고 나타나니 긴장감에 몸이 얼어 붙었다. 더군다나 인상은 좀 쎄야지. 도망가서 핑계 메시지라도 보내야 하나?  지금껏 나를 바람 맞춘 수 많은 여자들처럼? 차마 다가서지 못하고 도로 건너편에서 쳐다보고 있으려니 그녀가 휴대폰을 꺼내들었다.  

내게 연락하려는 동작이라는 걸 직감하고 나도 모르게 손을 흔들었다.  반가움도 실망도 아닌 뚱한 표정으로 빤히 나를 바라보는 눈동자에 가슴이 쿵쾅쿵쾅 뛰었다. 감정이 읽히질 않으니 더욱 초조했다. 차라리 대놓고 실망을 했으면 나도 할 말이 있으련만. 이성 관계가 아니라 편하게 만나자고 강조하지 않았는가.  쓰레빠 신고 와도 된다고까지 했는데.

인사를 했는지 어쨌는지 기억도 나질 않는다.  너무 긴장해서 대충 말을 주워 삼킨 후에 그나마 알아들은 것은 "거기 멀어요?" 라는 질문이었다.  우리 동네에 놀러오면 내가 데려가 주겠다고 한 식당.  시골 동네인 대신 풍경 좋은 장소가 하나 있어 자리 잡은 이탈리안 식당이었다.

감히 옆에서 걷지 못하고 안내하는 척 앞장서서 걸었다.  채팅으로 주고 받았던 신변잡기들을 늘어놓으며 대화를 풀어가려 노력했다.  따지고 보면 엄청 예쁜 여자가 나를 만나러 왔다고 해서 이상할 건 없다. 데이트가 아니라 진짜 편하게 만나자고 강조한 건 내가 아닌가.  머릿 속으로 서서히 긍정 회로가 돌아갔다.

사실 그렇게 '노는' 여자애는 아닐지 모른다. 겉모습으로 사람을 판단하자면 나는 전과 3범이다. 강도도 아니고 찌질한 잡범으로.  
어떻게 외모가 '일진' 처럼 생겼다고 '무서운 언니' 라고 장담할 수 있나.  아직 제대로 대화도 안해봤는데.

"오빠. 여기서 담배 한 대만 피우고 가요."

말보로 레드 정도로는 내 의견을 바꿀 수 없다. 그렇게 굳게 다짐하며 자신을 다독였다.



지금에야 일식이나 중식처럼 일상적인 문화의 일부가 되었지만 당시에는 이탈리안 레스토랑이 제법 분위기 잡는 장소였다.  그래봐야 내가 향한 식당은 파인 다이닝도 아니고 '파스타' 나 '마르게리따 피자' 정도나 먹고 나오는 곳이었지만 우리 촌동네에서는, 그리고 갓 스무살이 된 소녀에게는 그것만으로 충분했던 것 같다.
'이런 데 처음 와본다'며 기뻐하는 표정이 숨김 없이 드러나며 '노는 여자'처럼 보이던 인상이 순진한 소녀처럼 변했다.  표정이 싸늘했던 것은 본인도 긴장했던 것이라고.
덕분에 나도 긴장에서 벗어나 편안하게 수다를 떨었다. 첫 인상은 반만 맞았다. 소녀는 17살에 원인불명성 결핵에 걸렸다고 한다.  임상적 증상은 분명히 결핵 맞는데 막상 검사를 해보면 결핵균이 검출되지 않는 황당한 상황이었다고.  일단 결핵으로 판단하고 항생제를 맞기 시작했지만 치료 진척이 늦고 몸무게가 36kg 까지 빠졌다고 했다.

결국 학교를 자퇴하고 몸이 회복된 후에 외톨이로 검정고시 학원을 다녔는데 거기서 만난 언니오빠들이 친구가 되어줘서 너무 행복했다고 한다. 18-19살 무렵 분명히 미성년자였을 소녀를 데리고 언니 오빠들이 술집에서 찍은 사진을 보니 그녀의 '포스'가 어디에서 나왔는지 충분히 알 것 같았다.  
담배도 그들에게 배웠냐고 했더니 그렇다고 했다.  병원 생활만 하던 소녀이니 순진한 소녀인 것도 맞았고 노는 무리들과 어울렸으니 '놀던' 소녀인 것도 맞았다.  세상 모르던 아이에게 술과 담배를 물려놨으니 부모님이 보기엔 어떨까 싶었지만 이미 스무살이 되었으니 이제와서 내가 뭐라고 하겠는가.  어울리는 언니오빠들도 마냥 불건전한 사람들이 아니라 열심히 살겠다고 검정고시를 치던 사람들이니 미묘한 문제였다.

"근데 너 너무 예쁘다.  뚱뚱하다더니 하나도 안 뚱뚱한데?"

"저 보기보다 뚱뚱해요.  재활한다고 헬스를 계속 했더니 몸에 근육이 붙어서...허벅지도 엄청 굵어요."

"아냐.엄청 예뻐.  나는 진짜 편하게 만날려고 아무 생각 없이 나왔는데... 오빠 보고 실망했겠다."

"저는 얼굴 안 봐요."

'오빠도 잘생겼어요'는 도저히 불가능했던 모양이다.
검정고시를 합격하고 대학 준비까지 하는 와중에 언니오빠들과 흩어져 잠시 심심해진 상황에 나를 만난 것 같았다. '뚱뚱해도 환영' 이라는 채팅방 제목이 웃겨서 들어가 본 거라고.  
또래들과 유리된 채 투병 생활을 했던 무구한 소녀의 모습과,  어른이 되기 전부터 언니오빠들과 술을 마시며 쏘다녔던 '노는 애'의 이미지가 혼재하는 그녀의 모습은 매우 사랑스러웠다.  그녀의 행동이 탈선이라고, 더럽다고 손가락질 할 사람도 있겠지만 나를 대하는 모습만큼은 착하고 진솔했으므로.
세월이 흐른 뒤 떠올려보면 처음 만난 나에게 자신을 다 털어놓는 행동 자체가 너무 순진한 것 아니었는가 싶다.  학원에서 만난 언니오빠들에게 금방 물이든 것도 바로 그런 순진함 탓 이었을 것이다.

밥 먹은 다음에 뭐 하고 싶냐고 물었더니 술 마시기도 이른 시간이라며 고민하다가 PC방에 가자고 했다. 워크래프트 카오스도 아니고 LOL도 아닌 이상한 AOS 류 게임을 좋아했는데 정확한 이름은 기억나지 않는다.  자기가 캐리해주겠다는 기세등등한 태도로 3연패를 하고 나온 기억만 남는다. 시무룩해서는 내 눈치를 보는 모습이 상당히 귀여웠다.

이제 제법 해도 어두워졌고 비싼 밥도 먹였으니 보내야 하나 하는 생각을 하고 있을 때.  골목 어귀에서 다시 담배를 태우고 돌아온 그녀가 물었다.

"이제 우리 뭐해요?"

"뭐하고 싶은데? 나 만나러 이 동네까지 왔는데 내가 다 사줄게.  피곤하면 차 막히기 전에 가도 되고."

"그럼 저 저기 가보고 싶어요."

그 손이 가리킨 곳은 반짝반짝 LED 간판이 빛나는 모텔촌 이었다.  배시시 웃는 모습에 가슴이 두근두근 뛰었다.  나를 전혀 이성으로 대하는 것 같지도 않고, 채팅할 때 약속한 대로  나 역시 흑심 없이 대해야겠다는 결심을 진작 하고 있었는데.  아무 낌새도 없이 그린 라이트가 밝혀진 것이었다. 반짝반짝도 아니고 번쩍번쩍 하는 느낌으로.

정신 차리기 힘들었지만 모텔에 가본 경험 덕분에 가까스로 발걸음을 옮길 수 있었다.  입대 전 다른 지방에서 알바를 할 때 묵어본 것 뿐이었지만. 모텔 입구에 들어서며 스르륵 내  팔에 그녀의 팔이 감겨들었다.  또 찐따의 사고가 발동해 '이렇게 못 도망치게 만든 다음 남자들이 튀어나오는 거 아니냐' 는 상상을 잠깐 했다.

그녀는 열쇠로 룸 전기를 컨트롤 하는 모텔의 입장 시스템에도 신기해했다. 오빠는 이런 데 능숙한 것 같다며.  여지껏 나눈 대화와 태도로 유추하건데 그녀가 성 경험이 없을 것 같지는 않았고,  작년까지 미성년자였던지라 모텔 입장을 안해본 것 같았다.

모텔 어메니티에 포함되어 있는 콘돔을 꺼내 보여주며 완벽하게 '유경험자'인 척 하려 했지만 어림 반푼어치도 없는 소리였다.  훌렁훌렁 옷을 벗기도 눈치 보이고 침대에 앉아  모텔 시설을 살펴보는 척 눈치를 보았다.  

"오빠 먼저 씻어요."

"그럴까?"

씻는 사이 내 지갑이 사라져 있을수도?  이쯤되면 정말 멍청해보이겠지만 당시에는  이 찐따 마인드를 도저히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저렇게 이쁜 애가 나랑? 진짜로?  
쭈뼛쭈뼛 욕실을 살펴보자 제법 커다란 욕조 월풀이 비치되어 있었다.  신축 모텔을 잘 골랐나보다. 영화나 야동에서 보던 장면이 떠올라 나도 모르게 그녀를 불렀다.

"나랑 저기서 같이 씻을래?"

그녀는  이런 것도 처음인 듯 좋아했다.  둘 다 옷도 벗지 못한 채로 월풀 조작부를 만지작거리며 헤맨 뒤에, 무사히 뜨거운 물이 쏟아지기 시작하자 그녀가 나를 욕실 밖으로 쫓아냈다.

"그럼 제가 먼저 씻고 물 받으면서 기다릴테니까 오빠는 나중에 들어오세요."

"그냥 같이 씻고 들어가면 안돼?"

"부끄럽잖아요."

섹스 하려고 나를 모텔로 이끌어 놓고 같이 씻는 건 부끄럽다니. 당시 나는 좀체 이해할 수 없었지만 그러마 하고 욕실을 나갔다.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 TV를 켰다껐다하면서 초조함을 달래고 있으려니 곧 욕실에서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문을 열자, 머리를 틀어올려 보드라운 어깨를 드러낸 채로 월풀에 몸을 담그고 있는 그녀가 보였다. 관능적인 어깨선과 새하얀 목덜미 위로 수줍은 듯 배시시 웃는 그녀의 웃는 모습을 보자 피가 솟구치는 느낌이 들며 더이상 아무 눈치가 보이지 않았다.  옷을 집어던지듯이 벗고 샤워를 마친 다음 월풀로 들어갔다.
영화에서 본 것처럼 거품을 채우고 싶다며 샴푸로 장난을 치는 그녀의 어깨를 감아 고개를 기울이자  고운 쌍커풀 밑으로 촉촉히 젖은 눈동자가 한가득 시야를 채웠다.

첫 키스는 담배맛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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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 더 써야 합니다만 별로 재밌게 읽으실 분이 없을 것 같아 이만 줄이겠습니다.  혹시 원하시는 분 있으시면 이어 쓸게요

개인정보보호를 위해 이것저것 뒤틀다보니 시대 배경 같은 게 좀 안맞을 수 있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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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공묘유
25/05/30 21:42
수정 아이콘
다 가져오세요.
밥과글
25/05/30 22:03
수정 아이콘
정말 원하신다면 곧 쓰겠읍니다
25/05/30 21:46
수정 아이콘
으아니 선생님, 여기서 절단하시면...
밥과글
25/05/30 22:05
수정 아이콘
더 쓰고 끝내면 벌점 먹을 것 같아서요...
25/05/30 22:06
수정 아이콘
카카오페이 됩니까?
밥과글
25/05/30 22:15
수정 아이콘
읽으실만 한가요? 그러면 최소 첫사랑 편은 마무리 짓겠습니다
25/05/30 22:53
수정 아이콘
재밌어요. 더 써주세요~
25/05/30 22:36
수정 아이콘
부럽네요 크
25/05/30 23:21
수정 아이콘
2010년대 초반에 23살이면 여기서는 어린 편일겁니다 크크
쵸젠뇽밍
25/05/31 11:34
수정 아이콘
2000년대에 이미 노땅 사이트 소리 듣던 곳이라.
에이펙스
25/05/31 00:55
수정 아이콘
저도 중3시절 사귄 제 첫사랑도 버디버디 채팅방에서 만났습니다 크크크
키도 169에 엄청 예뻤는데(당시엔 저보다 컸음) 청춘이 그립네요.
25/05/31 01:14
수정 아이콘
(수정됨) 유년시절의 탐닉이 헛되지 않으셨나봅니다 술술 읽혀요. 재밌어요. 일본 노래중에 첫키스는 담배맛이 났어요 라는 가사가 들어간 노래가 있었던것 같은데... 우타다히카루였나요? 찾아봐야겠네요
larrabee
25/05/31 09:34
수정 아이콘
(수정됨) utada hikaru - first love 입니다 넷플릭스에 해당 노래에 영감을 받아 만든 드라마도 있으니 이런 감성 좋아하시면 한번 추천드립니다. 하츠코이로 검색하면 나옵니다
25/05/31 11:19
수정 아이콘
추천 고마워용:)
지구 최후의 밤
25/05/31 06:58
수정 아이콘
으아아아아 차라리 저녁에 볼걸 아침부터 이게 뭡니까 ㅠ
타츠야
25/05/31 08:01
수정 아이콘
어디에서 구독하면 되나요 선생님?
25/05/31 10:35
수정 아이콘
선생님 진짜 현실이었나요? 망상이 아닌거죠?
25/05/31 10:53
수정 아이콘
재밌게 읽었습니다
플리퍼
25/05/31 12:28
수정 아이콘
선생님 뭐하세요 지금 쓰고 계신거죠?
25/05/31 13:37
수정 아이콘
하두리 색감보다는 조금 더 선명한 화질의 글이네요. 잘 읽었습니다. 후속편도 지금 쓰고 계신거죠?
지스카드
25/05/31 13:52
수정 아이콘
선생님 아직 멀었습니까? 기다리다 조금 화가나려고하네요
베르테르
25/05/31 14:23
수정 아이콘
남자들에게 사랑받을 수 밖에 없는 플롯이네요 크크
추억 공유 감사합니다
Madjulia
25/05/31 14:49
수정 아이콘
더 안쓰시면 고소하겠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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