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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25/06/06 11:24:43
Name Poe
Subject [일반] 조금 다른 아이를 키우는 일상 12
15. 난생처음 느끼고 가져본 것들
막내가 병원에 입원했을 때는 첫 돌이 막 지난 무렵이었다. 그 당시 아이가 할 줄 아는 건 배밀이 조금이었다. 데굴데굴 굴러서 이동할 수는 있었으나 실생활에서 그걸 자주 하거나 길게 하지는 않았다. 장난감에 간혹 손을 내밀긴 하였으나 적극적인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다른 사람의 눈을 마주치지도 못했으나, 아주 가끔 자기가 잡으려는 것에 눈길을 주곤 했다. 쉽게 말해 12개월짜리가 3개월 수준의 발달을 보이고 있었을 뿐이었다.

우리 동네 재활센터 선생님은 곧 걸을 수 있을 거라고 우리 가족을 북돋았고, 실제로 아이를 걷게 하기 위해 엄격한 훈련을 계속 진행했다. 사실 그 선생님의 그런 엄격함 속에는 아이에 대한 사랑만 있는 건 아니라는 느낌이 있었다. 자신의 업적을 쌓고자 하는 열망도 드문드문 보였다. 그래서 우리가 가끔 다른 선생님을 뵙거나 시설에 다녀오면 좋아하지 않았다. 온전히 자기 힘으로 우리 막내를 걷게 하고 싶었던 것이었다. 빠르게 아이를 발달시켜야 하는 우리 입장에서는 좋은 특성인데, 가끔 훈련 중 아이에게 하는 말의 강도가 높을 때가 있었다. 훈련이 궁금해 한 번 참관하셨던 장모님이 보다 보다 우실 정도였다.

그 선생님은 우리가 입원 재활을 시작할 거라는 말에 많은 아쉬움을 나타내셨다. 자기 손으로 걷게 하고 싶었는데 이루지 못하게 됐기 때문이다. 게다가 정도 들었다. 아이와 수개월 구르고 같이 땀 흘린 정은 무시할 수 없었을 것이다. 아내와 아이를 저녁에 따로 초대해 식사를 대접하고 아이가 병원 가서 입을 옷도 사주셨다. 우리 역시 당시에는 그분의 강력한 훈련 스타일이 필요했기 때문에, 그리고 열정이 앞서서 가끔 센 발언을 할 뿐이지 의도 자체가 나쁘지 않다는 걸 이해하고 있었기 때문에, 감사했고 아쉬웠다. 그분은 병원에서 훈련받고 1달 안에 걷지 못하면 다시 오라고 여러 번 말했다.

이런 선생님과 집중적으로 수개월 보내서였을까. 서울 병원에 도착했을 때 우리의 목표는 따로 논의하지 않았어도 ‘걷기’로 통일돼 있었다. 3개월만큼만 발달한 아이를 6개월의 입원 기간 동안 걷게 하겠다는 결의가 우리 사이에 굳었다. 간절한 바람이기도 했다. 걸으면 시야가 높아지고 보고 접하는 게 많아져 뇌가 훨씬 빠르게 발전한다고까지 하니, 그 아이의 자발적 한 발짝은 우리 모두의 꿈과 소망이 됐다.

병원에 도착해 짐을 다 풀고 가족들까지 다 보낸 아내는, 같은 병실 엄마들과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나누게 됐다. 나중에는 이해하게 됐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아직 입원 초보였던 아내는 무척 생경한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엄마들 사이에 목표라는 게 없거나 너무 희미했기 때문이다. 모두 다 우리처럼 ‘걸어서 이 병원 문을 나서겠다’는 식으로 마음 굳게 먹고 아이를 열심히 훈련시키고 있을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오랜 재활과 더딘 성과로 엄마들은 지쳐있었다. 그래서 아내가 ‘아이를 걷게 할 것’이라고 목표를 말하자 코웃음 비슷한 반응이 나왔을 정도였다.

사실 나도 짐을 내리며 재활 병원 입원실이라는 공간을 난생처음 접하게 됐는데, 그 발랄한 듯 무거운 분위기기에 압도될 뻔했다. 그곳의 아이들 중 상당수는 말을 하지 못하거나 어눌했고, 이동이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그러니 아이들과 보호자들이 많은데도, 뭔가 알 수 없는 조용함이 공간 전체에 깔려 있었다. 도서관처럼 조용했다는 게 아니었다. 분위기 전체가 침울한 것도 아니었다. 엄마들끼리 웃고 대화도 나누고, 아이들의 앙증맞은 소리도 있긴 한데, 뭔가 비어있거나 허전한 느낌들이 있었다. 포기할 수도 없고 희망도 가질 수 없는 그 중간 지대의 공기가 아니었을까, 지금 와서 짐작한다.

아이들의 어려움이라는 것도 너무나 다양했다. 아무 말도 못 하고 웃으며 누워만 있는 아이, 이상한 자세로 걷고 이상한 발음으로 말하는 아이, 신나게 뛰어노는 개구쟁이 같은데 음식을 삼키지 못하는 아이, 너무 작고 힘이 없어 안아 드는 것조차 두려워지는 아이, 십 년 넘게 걸음마에 성공하지 못하는 아이, 온몸에 화상을 입은 아이, 외부와 소통이 되지 않은 채 마치 자기 영역 확보하듯 작은 원 모양으로 주야장천 뛰어다니는 아이... 우리 막내의 발달 지연은 생각나지도 않을 정도였다.

그런 아이들을 보자 내 마음에 안도감 비스무레 한 게 찾아들었는데, 화들짝 놀랐다. 마른 장작 위 불씨 보듯 부랴부랴 꺼버렸다. 난 남의 불행을 나의 행복으로 삼지 않는 사람인 줄 알았는데, 본능처럼 드는 그 기분이 스스로 역했다. 우리 아이에게 집중해야 하는데, 그래서 우리 아이 자체로부터 행복과 만족을 느껴야 했는데, 남과 비교해서야 그동안 내 마음속에 나도 모르게 있었던 조바심이나 위기감 같은 것들이 모습을 드러내고 완화된다는 게 충격적이었다. 우리 아이 그렇게 조급해야 할 아이 아닌데, 조금 다른 속도로 자라고 있을 뿐인데, 나는 입으로만 그렇게 말하고 사실은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일까.

순식간에 내 안에서 일어난 이 일은 꽤나 오랜 시간 내 안에 뭔가를 남겼다. 난 아직 그것을 설명할 수 없다. 다만 ‘나 당신들과 같은 처지면서, 당신들과 같은 아픔을 공유하고 있으면서, 감히 당신들을 내 안도의 재료로 삼으려 했어요’라는 그 찔림이 죄책감까지는 아니지만, 어느 정도 채무감 같은 묵직한 것으로 존재했었다는 것 정도로만 표현할 수 있다. 또 그것은 우리 아이를 향한 미안함으로 표출되기도 한다.

지금은 그 무게가 줄어든 상태다. 입원 생활이 길어지고, 그 아이들과 가정의 사연을 하나하나 알아가면서 마음 깊은 곳으로부터 그들을 위해 기도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지금은 내 아이의 상태를 그들과 비교하지 않게 됐다. 털끝만큼도 그런 생각은 들지 않아 마음이 편하다.(비교해 본 사람은 알 것이다. 비교의 시선을 가진 당사자가 제일 괴롭다는 걸. 비교하지 않게 되는 것만큼 마음을 속박에서 해방시켜 주는 게 없다.) 그들의 아픔을 나도 최대한 느껴보려 했더니 그 파렴치한 면모가 사라진 것이다.

그럼에도 그 채무감으로부터 훌훌 자유롭지 않은 건, 어찌 됐던 그날 그 한순간에 안도감이 들었다는 사실이 사라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 후 난 아픈 아이들을 여러 병원에서 마주칠 때마다 어쩐지 빚진 기분이 들곤 한다. 막 괴롭고 힘든, 슬퍼서 나도 모르게 눈물이 줄줄 나는, 그런 류의 감정은 아니다. 다만 내 앞날에 저 아이들에 대한 빚을 갚는 과정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예감처럼 스치는, 그 정도의 감각이다. 내가 우리 막내 앞에서 안내하고 있는 줄 알았는데, 막내가 날 이끌고 가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 어쩌면.



16. 방파제 사라지자 쓰나미 몰렸다
아내와 막내를 병원으로 보낸 다음 날, 눈 뜨자마자 새로운 현실이 들이닥쳤다. 당시 나는 작은 전문 매체의 국제부 기자 자격으로 집에서 근무하고 있었다. 국제부라 시차 때문에 업무 시작 시간이 늦어도 아침 여섯 시여야 했다. 일어나자마자 구독하고 있던 모든 외신들의 인터넷판을 열고 간밤에 일어난 일들을 확인해 요약했다. 그 후 우리 분야의 사건들도 똑같이 해 전파하는 것이 나의 정해진 오전 일과였다. 각종 사건 파악과 정리, 전파까지 마치면 11시 반~12시가 됐다. 그러면 아내가 차려준 맛있는 밥을 먹으로 부엌에 가서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고 오후 업무를 시작했다.

하지만 이제부터는 달랐다. 해외 소식들을 파악하고 요약하면서 아침을 차려야 했다. 여기서 아침을 차린다는 건 애들을 깨워서(초등 고학년 아이들 깨워보았는가? 지독히 안 일어난다), 아침 상 앞에 앉히는 것도 포함된다. 학교 시간표와 숙제, 준비물도 대략이나마 확인해 아이들에게 상기시켜줘야 했다. 회사 일 때문에 내가 직접 나서서 챙겨 주지는 못했고, 챙겨 가라고 채근했다. 아이들과 같이 상에 앉아 아침을 떴으면 좋았겠지만, 그럴 시간이 없었다. 어떤 날은 식빵만 식탁에 꺼내놓고 알아서 토스트 해 먹으라 아이들에게 말해놓은 채 서재로 돌아가기도 했었다.

오전 기사를 쓰면서도 다른 머리 한쪽으로는 아이들 점심 차려줄 고민을 해야 했다. 아침에 토스트나 시리얼 먹인 날에는 이 고민이 꽤나 큰 비중을 차지했다. 점심이라도 잘 먹여야 한다는 아비의 마음이, 더 좋은 기사를 쓰고 싶다는 사회인의 마음보다 우위에 있었다. 문제는 내가 요리를 못한다는 거다. 할 수 있는 건 미역국과 김치찌개가 전부였다. 잘 먹여봤자 스팸이나 꽁치 들어간 김치찌개 아니면 황태나 참치로 끓인 미역국이었다는 것이다. 그러니 아이들 점심 고민이 큰 날에는 기사 질도 떨어지고, 아이들 점심도 크게 나아질 것 없는, 이도저도 아닌 결과만 나왔다.

오후가 되면 나에게 크게 두 가지 임무가 주어졌다. 그날의 주요한 사건을 취재해 기사화하는 것이 하나, 회사에서 발간하는 주간지의 콘텐츠를 마련하는 게 둘이었다. 국제부라 취재를 발로 뛸 수가 없었다는 게 다행이었다. 여기저기 인터넷에서 정보를 찾고, 때론 이메일로 인터뷰를 해가며, 기사를 만들었다. 나름 국제부 기자일 10년 차라 이게 큰 문제가 되지는 않았다.

문제는 주간지였다. 한 주 동안 해외에서 나온 주요 보고서들을 번역하고 로컬라이징 해야 했는데, 세계의 전문가들이 수많은 날 동안 집단으로 연구하고, 추론하고, 실험하고, 확인해서 낸 결과물을 충주에 사는 어느 비전문가 아저씨가 뚝딱 번역할 수 있을 리 만무했다. 매일 처음 듣는 개념과 처음 보는 온갖 전문용어들을 학습하고 이해해야 했다. 외부 번역가들이 있었지만, 결국 감수는 내가 해야 했기 때문에 업무량이 실질적으로 줄어들지는 않았다. 이런 보고서를 일주일에 4~5개씩 완료해야 주간지 하나가 완성됐다. 수년 째 주말도 없이 살았다.

그래서 아내가 있을 때도 나의 오후는 온전히 회사의 것이었다. 2~3시에 시작한 오후 일과는 빨라야 새벽 12~1시에 끝나기 일쑤였다. 아이들은 늘 ‘아빠가 재택근무 해봤자 같이 놀지도 못한다’는 게 불만이었다. 아내도 늘 시간에 쫓기는 나 때문에 덩달아 불안해했다. ‘당신 마감 괜찮아?’라는 질문을 아내는 만성적으로 입에 달고 살았다.

여기서 아내가 빠지니 큰일 났다. 아침과 점심 설거지, 빨래와 빨래 개기, 장에 옷들 넣어 놓기, 집안 청소 전부 일과에 포함돼야 했기 때문이다. 먹어야 했기 때문에 설거지는 늘 1순위였다. 입어야 했기 때문에 빨래와 개기 역시 무시할 수 없었다. 아이들에게 협조를 구했다. 설거지된 식기들을 제자리에 넣어주기만 해라, 다된 빨래를 제자리에 잘 넣어두는 것도 너희가 해라, 아빠는 식기세척기랑 세탁기 돌릴게. 처음에는 삐그덕 댔지만, 점차 이 체계가 자리를 잡아갔다. 저녁은 점심에 먹고 남은 걸 다시 덥혀서 먹는 게 대부분이었다.

난 멀티가 도무지 되지 않는 유형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여기저기서 펑크들이 나기 시작했다. 어떤 날은 기사 요약만 해놓고 전파를 하지 않기도 해 회사에서 난리가 나기도 했고, 기껏 찌개를 끓여놓고 아이들을 기다렸는데 밥이 없어 옆집에서 공깃밥을 급히 빌리기도 했다. 관공서나 은행에서 처리해야 할 일들이 항상 뒤로 밀리기도 했고, 아내가 병원에서 필요하다고 한 물건을 챙기지 못하고 병원에 가기도 했다. 모르긴 해도 기사질도 그 당시는 좋지 않았을 것이다.

집에 있는 아이들에게서도 점점 문제가 나오기 시작했다. 회사 일은 줄어들지 않고, 집안 일도 쓰나미처럼 몰려왔기 때문에 내가 아이들에게 요구하고 바랐던 건 딱 하나, 차려준 음식 잘 먹으라는 거였다. 애들이 먹을 거 불평만 하지 않아도 나는 많은 시간을 아낄 수 있을 것 같았고, 실제 그랬다. 입맛을 일일이 맞춰줄 시간도 능력도 없었다. 하지만 우리 둘째는 입이 좀 짧은 편이었다. 아빠와 집의 급박한 상황을 알고 있지만, 그걸 안다고 해서 그 입맛이 갑자기 개선되지는 않았다. 음식 불평을 직접 하지는 않았지만 먹는 양이 크게 줄었다. 식탁에서는 매일처럼 나에게 혼났다. 아이는 말라갔다.

첫째는 첫째대로 말수가 줄어갔다. 한창 이런저런 고민과 생각이 많을 나이인데, 아빠는 바쁘기만 했다. 그 아빠에게서는 늘 ‘조금 있다가’라는 답만 돌아왔다. ‘조금 있다가’ 답해주는 경우도 많지 않았을 것이다. 엄마가 그나마 말 상대가 되어주었는데, 그 엄마는 멀리에 있었다. 가장 사랑하는 막내도 볼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 무렵 딸아이는 속으로 뭔가 많은 걸 삼켰던 것 같다. 그중에 말이 있었고, 지금까지도 그렇다.

그 생활을 한 반년 했을 무렵, 나는 코피를 흘리기 시작했다. 난 피곤하거나 몸이 안 좋아서 코피를 흘려본 적이 살면서 한 번도 없었다. 튼실한 체형과 체질을 가지고 있어 건강에 있어서는 크게 어려움이 없이 살았다. 그래서 처음 코피가 났을 때 웃어넘겼다. 하지만 연달아 서너 번 출혈이 있고 나서부터 살짝 걱정이 들었다. 너무 몸을 갈아 넣고 있었나. 하지만 다른 방법이 없는데...

우리 집이 뭔가 엉망진창으로, 겨우 구색만 갖춘 채 돌아가고 있었다. 찝찝했다. 하지만 탈출구는 보이지 않았다. 막내만 나아진다면 뭐든 희생해도 돼,라고 생각했는데, 그 희생이라는 게 생각보다 커질 수 있다는 불안감이 싹트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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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공묘유
25/06/06 11:45
수정 아이콘
병원밖 가족들의 삶은 잘 몰랐는데 치열하네요

오늘도 잘 읽었습니다
25/06/06 12:25
수정 아이콘
힘내십쇼 ㅠㅠ
에이치블루
25/06/06 15:25
수정 아이콘
남과 나를 비교해서 행복을 느끼는 마음은 인간의 본능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에 대해 사람으로서 부끄러움을 느끼는 마음은 인간의 감성이겠지요.

너무 스스로를 탓하지 마세요. 비교는 인간 본성입니다.
그렇지만 그러면 안된다고 생각하시다니 대단하십니다.

언제나처럼 잘 읽고 있습니다.
25/06/06 15:48
수정 아이콘
[그런 아이들을 보자 내 마음에 안도감 비스무레 한 게 찾아들었는데, 화들짝 놀랐다. 마른 장작 위 불씨 보듯 부랴부랴 꺼버렸다. 난 남의 불행을 나의 행복으로 삼지 않는 사람인 줄 알았는데, 본능처럼 드는 그 기분이 스스로 역했다.]

이 문장을 보는데 제 이야기를 보는거 같아 소스라치게 놀랐습니다.
제 아이도 자폐지만 그래도 학교도 다니고 미약하게나마 의사소통도 가능한 정도인데 가끔 저희 아이보다도 어려운 친구들을 보며 아, 그래도 저 친구들보다는 우리아이가 낫구나...라는 생각이 저도 모르게 들면서 제 스스로가 혐오스러울때가 있었거든요.

그래서 요즘에는 그런생각이 들지않도록 최대한 신경을 돌립니다.
그렇지 않으면 제 스스로가 너무 혐오스러움에 못견딜거 같아요.
슬레이어스박사
25/06/06 16:39
수정 아이콘
응원합니다
에어컨
25/06/06 18:41
수정 아이콘
[포기할 수도 없고 희망도 가질 수 없는 그 중간 지대의 공기]가 어떤건지 저도 경험해봐서 알 거 같습니다... 필력이 어마어마하다 싶었는데 글 쓰는 직업이셨군요. 오늘도 경험 공유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잘 읽었습니다.
플리퍼
25/06/07 01:10
수정 아이콘
공짜로 아무렇지않게 읽기 미안하고 무거운 글입니다. 전에 달았던 답글을 다시 똑같이 달고 갑니다.
선생님 가정에 평화와 행복이 가득하길 진심으로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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