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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1/28 20:04
골든 글러브를 타기에는 꽤나 저조한 성적임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탔냐는 것인 듯 합니다.
지금 찾아보고 있는데 신기하기는 하네요. 처음에는 규정타수 때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더 좋은 성적을 낸 김종훈 선수, 장종훈 선수가 90경기 정도를 했고 박재용 선수가 115경기를 했네요. 그런데 이거라고 하기에는 박정태 선수가 2루 골든글러브를 탔는데 94경기로 비슷하고;
11/11/28 20:17
97년도에도 골든 글러브 탔네요.
성적은, 94경기 .245 7홈런 33타점 1도루(...) 당시 경기를 안봐서 도저히 모르겠네요. 역대 지명타자 골든글러브를 모두 찾아봤는데 전부 3할이 넘는 타율을 가지고 있고 3할이 안되는 다른 지타는 01이승엽 선수와 95김형석 선수인데 01이승엽 선수는 대신 홈런을 39개를 때렸고 김형석 선수는 그래도 .270 의 타율, 68타점, 10홈런을 때렸는데.
11/11/28 22:32
박재용. 등번호는 8번(해태) - 27번(쌍방울), 인간 승리의 주인공.
사실 야구를 해서는 안 될 몸이었다. 인터뷰를 할 때면 기자의 입술을 보고서 느릿느릿 억양없이 말을 할 정도로 중증의 난청 환자였고, 발도 느려서 수비가 불가능한 선수였다. 그러나 귀가 들리지 않는 대신 집중력이 뛰어나 단국대 시절 팀의 붙박이 4번타자로 활약하며 국가대표 상비군에 항상 이름을 올렸고, 해태 타이거즈는 박철우의 후계자로 그를 낙점하고 2차 1순위에 지명했다.청각타법의 원조? 해태에서도 이상훈을 상대로 역전 그랜드슬램을 작렬하고, 96년 한국시리즈 6차전에서 결승 득점을 기록하는 등 좋은 활약을 펼쳐 세 차례 우승 반지를 끼고, 두 차례 지명타자 부분 골든글러브를 기록했다. 하지만 당시 지명타자 입후보 기준이 300타석 이상에 2할 5푼 이상의 타율을 기록한 선수였기 때문에 규정타석을 채우지 못한 첫 지명타자 부분 수상자였던 그를 두고서 PC통신 상에서는 우승팀 보정이라고 까였다(…) 결국 노쇠화와 수비 불가라는 단점 때문에 장성호의 성장과 양준혁의 영입 이 후 기회를 잃어 99년 쌍방울 레이더스로 트레이드되었고, 2000년 소리소문없이 은퇴했다. 인간이 자신의 한계를 얼마만큼 뛰어넘을 수 있는지 보여주었던 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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