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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05/14 22:58
태종이 왕위에 오를때쯤엔 ,, 조선이 건국된지 얼마되지 않아 , 정치적으로 매우 혼란스러운 시기였죠
그래서 태종이 왕위에 오를때 왕자의난이 있었던거구요 , 윗분이 말씀하신것처럼 외척세력을 많이 두려워했죠 어느시대나 그렇듯이 외척세력의 힘이커지면 자연스레 왕권의 힘은 약화되고 그 나라는 점점 힘을 잃기시작하다 멸망으로 치닫게되구요 고려말때만 해도 외척세력+권문세족 때문에 고려가 망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정도로요, ~ 그래서 태종이 외척세력이나 자기자신에게 위협이 되는존재들은 모두 쓸어버렸죠 그이후 왕권이 강화된것이구요 , 그시기로 친다면 태종의 정책은 나름 괜찮았다고 생각됩니다만 ,,
09/05/14 23:00
국가의 "정책"으로서는 좋다고 봅니다. 권력의 단일화가 이루어 지니까요.
전제정권에서는 왕이 멍청하지 않고 권력이 모이면 국가가 나름 안정되더군요. 그러나 "가정"의 측면으로서는 극히 피해야할 사항이겠습니다 사회에서 성공과 가정에서의 성공중 어느 가치를 우선시하느냐 차이같습니다.
09/05/14 23:10
국사책에서 보면..
왕권이 강할 때 백성들의 삶이 상대적으로 좋았던 것 같더군요. (연산군 예외 입니다.) 반대로 신하들의 권력이 강할 때 보면 백성들은 죽어나는 듯 하더군요. (조선말 세도정치) 권력을 쥔 신하들이 관직을 팔고, 백성을 수탈하는 모습이 많았죠. 민주주의가 당연한 현대인에겐 저게 당연히 잘못된 일로 생각 되겠지만.. 당시 사회에서는 특정 신하에게 큰 권력을 안 주고 계속 견제하면서 왕권을 강화하는 것이 백성들의 삶에는 좋게 작용하기 때문에 긍정적으로 평가 되는 것 같습니다.
09/05/14 23:52
지금의 눈으로 결과적으로 봤을때 좋았으니까 좋게 평가받을수 밖에 없는게 아닐까요?
일단 힘들게 왕이 되었고, 왕이 되는 과정에서 민씨의 가족들이 너무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죠. 그리고 세자와 친하게 지냈고요. 그랬으니 자신이 죽고나서의 왕권에 위협을 가할수 있는 모든 경우의 수를 없애버렸다고 생각이 듭니다.(자신이 엎어 버렸으니 자기도 무서움을 느낀다고 할까요?) 그리고 후에 세종대왕의 장인까지 죽여버리죠. 외척에 대한 위험을 알고 있으니 그랬다고 봅니다. 결국 이로인해 정치적 안정을 찾고 왕권을 강화 시켰기 대문에 자신의 아들인 세종시대에 가장 훌륭하게 발전 할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세종대왕 스스로의 능력또한 대단했다고 생각합니다.) 모든 악업을 자기가 가져가고 그 대신에 누구도 탐낼수 없는 왕권을 확립했으니 말이죠. 태종이 왕이 아니라 일반 양반집이나, 고위간부였다면 비탄을 받았어야 된다고 생각하지만 그 시대의 상황으로 봤을때는 나쁘지 않은 선택이라 생각합니다.
09/05/15 04:08
제가 왕이었더라도 태종과 똑같이 했을거 같습니다.
옛날 권력구조라는게 참 복잡하죠. 왕은 한명이고 그 왕을 노리는 사람은 왕족 수십명.. 자신의 옆에 강한 세력을 놓아두면 오히려 자신에게 칼이 날아오니.. 그러고 싶지 않아도 자신이 살기 위해서, 자신을 중심으로 권력을 재편하기 위해서 반드시 해야 할 행동 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의 형이지만 선대왕의 적통이기 때문에 자신을 죽이고 왕이 될 수 있고, 그 형들의 자식 또한 왕족이므로 자신의 아들을 몰아내고 왕을 차지할 수 있으므로 싹을 잘라버리는 거죠. 비슷한 예로 세조(수양대군)가 왕위에 올라 단종(폐위 되었지만 잠재적으로 자신에게 해가 될 수 있음)을 죽인것과 광해군이 선조의 정비(인목대비)의 소생 영창대군을 8살의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죽여버리죠. (광해군은 후궁의 소생이므로 적자가 왕위를 잇는다는 원칙에 위배가 되는것에 대한 방어차원) 또한 인조는 자신의 아들인 소현세자를, 영조는 자신의 아들인 사도세자를 죽여버리죠. 아들들이지만 자신의 왕권이 위험에 처하자 가차없이 죽여버린 것입니다. (사서에서 이 죽음들에는 세자들의 인격적 결함이 컸다라고 하는데, 사실은 당파 싸움으로 인한 힘겨루기의 희생자들이죠) 반대로 광해군(북인세력)은 자신보다 권력이 세져 버린 서인세력 인목대비와 인조에 의해 폐위당하고 경종(소론세력)은 역시 자신보단 권력이 세던 노론세력 연잉군(영조)이 죽였다는 설이 있고 정조는 노론 세력(정순왕후)에 의해 독살 당했다는 설이 있듯이 말이죠. 위의 경우는 모두가 다 왕이 좀 우유부단 하다가 오히려 자신이 해를 입은 경우 입니다. 칠때 쳤어야죠. 자신이 살기 위해서라도 왕권은 강하고 볼일 입니다. 숙종(환국정치)과 연산군은 그런게 좀 개인의 감정적으로 심했지만요.. 태종이 그렇게 앞에서 쓸어(?)줬기 때문에 왕권이 강해지게 되었고 그렇게 강해진 왕권을 통해 자신의 아들인 세종때에 와서 모든 힘을 국력 발전에 쏟을수 있었기 때문에 조선의 전성기를 맞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태종이 폭군으로 인정되지 않는 이유는 역사의 기록은 결국 승자의 것이고(왕권 강화의 정당성) 결정적으로 조선 역사상 가장 위대한 왕인 세종의 아버지이기 때문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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