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게시판
:: 이전 게시판
|
이전 질문 게시판은 새 글 쓰기를 막았습니다. [질문 게시판]을 이용바랍니다.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09/10/12 21:55
유비가 실제적으로 얻은 이득은 한실의 부흥만을 외치던 유비세력에게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제시(천하삼분지계)
세력을 뭉치게 하는 하나의 전략적 구심점 역할을 하였고(물론 그 과정에서 관우와의 세력다툼이 있었지만) 유비세력이 멸망하기 바로 직전 손권의 적벽 참여를 이끌어 낼 정도의 외교능력과 외교안목을 얻었고 촉을 얻고 난 후 법치국가의 틀을 구성하는데 가장 큰 기여를 한 인물이 제갈량이라고 생각합니다. 전쟁을 이끌어내는 능력은 적벽이후 형주쟁탈, 방통사후 성도공략, 한중쟁탈전 이후 남만정벌까지 충분히 보여주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아쉬운 점은 뒤가 없는 전쟁을 해야 했기에 너무 안정적인 전략만을 선택할 수 밖에 없었던 한계가 아닌가 싶습니다. 관우 사후 유비의 막무가내식 동오침략을 막지 못한 것도 아쉽구요. 두번째 질문 적벽대전에 관한 부분은 조조가 남벌을 시작한 이유는 유비가 아니라 형남~동오에 이르는 대규모 원정이었습니다. 따라서 형주를 정벌하였을 때 조조에게 다음의 적은 동오였지 멸망한 세력에 가까운 유비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헛점을 집요하게 파고든 제갈량, 주유, 노숙의 전쟁이 적벽대전이었고, 조조로서는 명분이 아닌 실리를 추구했던 곽가의 부재가 아쉬웠던 부분이었습니다. 제 생각에 당시 곽가가 있었다면 얼마 들이지 않아 없앨 수 있었던 유비라는 작은 불씨를 제거하는 것을 추천했을 것입니다. 가후가 그 부분을 놓친 부분도 아쉽게 생각하고 있구요. 여담으로 삼국지에서 가장 중요한 전쟁은 적벽전이 아닌 관도전이라고 생각합니다. 조조가 중원의 패자로 등장하게 된 전쟁이자 명실공히 1인자로 나서게 되는 전쟁이지요. 적벽전은 단지 작은 천하통일의 시기를 늦추고 유비와 손권이 강남과 서촉을 얻어낼 수 있는 시간을 벌어낸 전쟁이었다고 생각합니다.
09/10/12 22:04
shadowtaki님// 적벽대전에 들어가기 이전에 유비를 처리하지 않은 것은 조조로서는 커다란 실수군요.
그 당시 형주를 정벌한 기세로 유비를 끝까지 추격했다면 갈곳 없는 유비는 항복할 수 밖에 없고, 항복이냐 항전이냐를 놓고 격렬하게 갈라져 싸운 오나라 조정의 그 당시 상황에 비추어 보아 오나라의 도움을 기대하기도 힘든 상황이었죠. 결국 배후에 유비를 남겨놓음으로써 퇴각할 때 기습을 당하고, 서량의 마등 역시 남겨놓음으로 장안이 함락되기까지 했구요. 이후에 유비가 촉을 정벌했을 때 한중에서부터 쳐들어가지 않아 오히려 한중을 빼앗기는 등 조조도 전략적 선택에서 오류가 많았네요. 다만 관도전에서의 승리가 중원대륙의 주인을 거의 갈라놓을 정도의 커다란 전략적 의미를 가졌기에 다른 싸움에서의 실수나 패배들이 크게 영향을 주지는 못했던 것 같네요. 좋은 답변 감사합니다.
09/10/12 22:06
두번째는.. 파이썬 1:2를 하는데 본인이 12시 2시 앞마당까지 전부 먹고 6시 입성한 후 멀티하면서 8시로 진격중이고 8시에 본진플레이중인 상대 (손권) + 6시 털려서 5시에 새로 본진 차렸지만 저글링 한부대에 성큰 두개 있는 (유비) 상황이겠네요..
굳이 5시를 칠 이유는 없죠.. 그러다 8시 공격하다 사이오닉스톰에 병력 다 털리고 겨우 병력조금 살려서 본진으로 귀환중에 아드레날린 저글링 (관우+장비+조운)에 뒤 잡혀서 그나마 있는 병력 다 잡히고 리버한기만 살아 돌아간거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