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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12/01 14:39
삽십대 중반인 제 기억속에 이문세는 가수이자 별밤지기였고요, mp3는 커녕 cd도 없었던 중고등학교때, 라디오는 정말 모든 학생들의 친구였죠.. 특히 늦은밤 홀로 공부하며 심야라디오방송 듣던 기억이.. 아 그립습니다 그때.
암튼 각설하고 ^^ 이문세는 4집을 그의 정점이라 보구요, 지금 들어도 명반중 명반입니다. 당시에 얼마나 대단했나하면, 앨범안에 있던 자신의 곡들이 음악차트 1,2,3위를 혼자 싹쓸이하던 때가 있었습니다. 변진섭과 더불어 당시에 발라드계의 지존였죠.
09/12/01 15:51
3집 난 아직 모르잖아요, 소녀, 휘파람으로 폭팔해서
4집에서 모든 곡이 대박이었죠 - 사랑이 지나가면, 이별이야기, 가을이 오면, 깊은 밤을 날아서, 굿바이, 그녀의 웃음소리뿐... 가수로는 물론이고 라디오 별이 빛나는 밤에의 DJ로서 영향력은 정말 막강했죠. 지금 상황은 잘 모르겠는데 당시 중고생들은 거의 모두 밤 10시부터 12시까지 별밤을 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껍니다. 워낙 인기가 있는 라디오 프로그램이어서 코너 게스트로만 나오면 거의 다 스타가 되었죠. 당시 무명이었던 이경규, 김건모가 별밤에서 떴죠.
09/12/01 17:49
84년생이시면 모르는 것이 당연하다 생각됩니다.
제가 81년생인데, 막내라서 라디오같은걸 많이 들어서 별밤지기로 알고 있었거든요. 96년 조조할인이 가요톱텐 1위를 차지했는데, 그게 10년만의 1위라고 들었었습니다. 그러니까, 86~88년 정도가 전성기라고 볼 수 있지요. 변진섭씨가 90년이 되기 직전, 신승훈씨가 90년이 된 직후정도로 기억되니, 이문세>변진섭>신승훈이란 흐름이 있었다고 생각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제가 기억하는 이문세씨의 유명세는 '별이 빛나는 밤에' 이른바 별밤이란 프로그램의 진행자로서 '별밤지기'라는 소릴 들었을 때입니다. 86년부터 96년까지 최장수 별밤MC기도하지만, 가장 전성기를 통채로 이끌었던 MC기도하지요. 당시 라디오DJ하면 별밤 이문세, 2시의 데이트 김기덕이 바로 꼽히던 때였습니다. 현재 '일요일일요일밤에'가 '일밤'으로 불리고 있는데요. 이문세씨가 일밤의 MC가 되면서 별밤을 따라 일밤으로 불렸던 기억이 있습니다.
09/12/02 09:38
72년 생의 눈으로 이문세의 당시 대중적 인기는 가히 폭발을 넘어서는 수준이었고,
거의 모든 학교 학생이 이문세의 리어카표 카세트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때 느꼈던 보급률은 반 60명중 55명.. 이후 그 정도의 파괴력은 서태지말고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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