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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5/02/22 03:41:37
Name 화이트데이
Subject [일반] [야만] 메이저리그 최고의 강타자, 랄프 카이너



메이저리그에서 홈런을 한다면 떠오르는 선수는 누가 있을까? 대표적으로 베이브 루스, 배리 본즈, 행크 아론, 마이크 슈미트 등이 떠오를 것이고, 최근의 선수로 한정짓는다면 미겔 카브레라, 마이크 트라웃, 알버트 푸홀스 등이 떠오를 것이다.

그렇다면 메이저리그에서 가장 많은 홈런왕을 따낸 적이 있는 타자는 누구일까? 이 역시 베이브 루스이다. 베이브 루스는 총 12번의 홈런왕을 해보았다. 그렇다면 연속 기록으로 보았을 때, 홈런왕 중 최고는 누구일까? 의외로 베이브 루스가 아니다. (베이브 루스는 2위이다.) 1위는 다름 아닌 랄프 카이너이다. 의외의 처음 듣는 사람 또한 있을 것이다. 랄프 카이너는 7년 연속 홈런왕으로 이 부문의 1위이며, 베이브 루스는 6년 연속 홈런왕으로 2위이다. (3위는 마이크 슈미트의 3회).

[랄프 카이너의 7년 연속 홈런왕]
- 1946년 : 23홈런 81타점 .247 .345 .430
- 1947년 : 51홈런 127타점 .313 .417 .639
- 1948년 : 40홈런 123타점 .265 .391 .533
- 1949년 : 54홈런 127타점 .310 .432 .658
- 1950년 : 47홈런 118타점 .272 .408 .590
- 1951년 : 42홈런 109타점 .309 .452 .627
- 1952년 : 37홈런 87타점 .244 .384 .500

만약에 지구를 나누지 않은 기록으로 보자면, 이 역시도 랄프 카이너의 몫이다. 베이브 루스는 4년 연속(1926~1929), 랄프 카이너는 6년 연속(1947~1952) 홈런왕을 달성했다.

- 탄생과 유년 시절

랄프 카이너는 뉴 멕시코 주에서 1922년 10월 27일에 태어나 태어나 캘리포니아에서 자랐다. 그는 펜실베니아 더치(독일-스위스에서 이주한 미국인)와 스코틀-아일랜드(미국에 이주한 스코틀랜드계 북아일랜드 사람)의 혼혈로 독특한 혈통이었다. 아버지를 4살의 나이에 여윈 그는 우연히 자신과 같은 처지인 이웃과 함께 야구를 처음으로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유격수로써 유소년 팀에서 활약하였는데 이 때 스폰서 팀은 다름 아닌 뉴욕 양키스였다.) 그는 고교 시절 외야수로 활동하였는데 이 때의 활약은 썩 인상적이지도, 그렇다고 아주 뛰어나지도 않았다.

[랄프 카이너의 고교 통산 성적]
- 1941년 : .279 11HR
- 1942년 : .257 14HR


- 군 입대

그는 만 23살의 늦은 나이에야 메이저리그에 데뷔할 수 있었는데 그가 바로 미 해군 파일럿으로 세계 2차대전에 참전한 용사였기 때문이다. 1943년 그는 토론토 블루제이스로 최초 입단을 제의받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곧바로 미 해군에 들어갔으며, 3년동안(1943~1945) 태평양에서 대(對)함수함 임무를 수행하며 군 복무를 성실히 수행했다. 그는 임무를 배팅에 비유하는 독특한 습관이 있었는데 임무에 성공할 경우 '홈런', 임무에 실패할 경우 '배트에 거의 닿았다'는 식으로 표현하였다. 군대에서조차 야구 덕후였다.

- 종전 이후, 늦은 데뷔

1946년 그는 만 23살의 나이로 피츠버그 파이어리츠에 데뷔할 수 있었다. 그에 대한 기대치는 의외로 높았다. 당시 피츠버그의 전담기자였던 찰스 도일은 그를 보고 "카이너는 사슴처럼 달릴 수 있었고, 디마지오처럼 던질 수 있었으며, 그가 배트를 눈 깜짝하듯이 휘두르면 공은 어느새 라인 드라이브로 펜스를 넘어가 있었다" 라고 격찬했다. (하지만 랄프 카이너는 수비력과 주루 플레이에 관해서는 굉장히 좋지 못한 선수였다. 이는 전형적인 기자들의 'gush(진실성 없는, 영혼 없는 격찬)'라고 보면 될 듯 하다.)

하지만 힘 하나는 진퉁이었다. 그는 109개의 삼진, .247로 타율은 좋지 못했지만 23개의 홈런을 때려내며 데뷔하자마자 네셔널리그 홈런왕을 거머쥔다. 그리고 1947년부터 1952년까지 6번의 양대리그 홈런왕을 기록했으며, 1947년부터 1953년까지 7년 연속 30홈런을 달성한다. 당시 고의사구를 기록하지 않아 정확한 볼넷 기록을 얻기는 힘들지만 그는 1948년부터 1953년까지 매번 100개 이상의 볼넷을 기록하였으며,(1947년 98개) 그동안 삼진은 6~70개 전후로 당할 정도로 뛰어난 능력을 보여줬다. 그가 루키부터 5년동안 기록한 홈런 수는 215홈런으로 메이저리그에서 가장 높은 기록이다. (2위 : 알버트 푸홀스의 201홈런).

그는 전성기 6년동안 평균 152경기에서 156개의 안타 45개의 홈런 115개의 타점, .286 .414 .592 라는 어마어마한 성적을 보여주었다. 조정OPS로는 165. 그는 3번의 조정OPS 1위, 장타율 1위를 기록했으며 이는 당연히 양대리그 통산 수치이다.

그의 타석당 홈런 비율은 14.11. 이는 메이저리그 통산 5위의 기록이며, 약쟁이들을 제외하면 통산 3위의 기록이다.

[타석 당 홈런 비율]
- 1위 : 매크 맥과이어 10.61, 우타자
- 2위 : 베이브 루스 11.76, 좌타자
- 3위 : 배리 본즈 : 12.92, 좌타자
- 4위 : 짐 토미, 13.74, 좌타자
- 5위 : 랄프 카이너, 14.11, 우타자
- 6위 : 하몬 킬브루 14.22, 우타자
- 7위 : 새미 소사 14.47, 우타자
- 8위 : 라이언 하워드 14.70, 좌타자
- 9위 : 테드 윌리엄스 14.79, 좌타자
...

그렇다고해서 그가 타자친화적인 구장에서 뛰었냐 의심할 수도 있다. 전혀 그렇지 않다. 그가 뛰었던 포브스 구장은 초기에는 360피트, 442피트, 376피트로 다소 짧았으나(?) 관중석 확보를 위해 개축하면서 좌중간 435피트, 우측 457피트라는 무식한 길이를 자랑했다. (오죽하면 랄프 카이너는 원정에서 더 홈런이 많은 신기한 홈런왕이었다.) 홈런을 쳐내려면 기본적으로 비거리가 최소 440피트 가량은 나와야한다는 것이다.

1947년에는 그가 비로소 주목을 받기 시작함과 동시에 야구계의 이목이 그에게 집중되었는데, 베이브 루스의 60홈런을 기록을 깰 수 있는 유력한 후보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그는 6월까지 홈런 20개를 쳐내며 산술적으로 60홈런의 가능성을 내비췄다. 하지만 결국 올스타전 이후 홈런의 갯수가 조금씩 줄어들면서 51개의 홈런에 머무르고 만다. 그가 타자 친화구장의 홈팀이었으면 60홈런의 가능성이 있지 않았을까.


하지만 그럼에도 그가 '샌디 쿠팩스'처럼 회자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상대적으로 타자보다는 투수가 기록적인 측면에서 주목받는 것도 있지만 가장 큰 이유는 그의 팀이 당시 약체였던 피츠버그 파이어리츠였기 때문이다. 피츠버그 파이어리츠는 카이너가 1953년까지 이 팀에 뛰는 동안 단 한번 5할 승률에 성공하였으며 1952년에는 무려 42승 112패라는 충격적인 기록을 냈을 정도로 약체인 팀이었다.

[피츠버그 파이어리츠의 1946년부터 1953년까지 기록]
- 1946년 : 63승 91패 (7/8) 0.396
- 1947년 : 62승 92패 (7/8) 0.403
- 1948년 : 83승 71패 (4/8) 0.539
- 1949년 : 71승 83패 (6/8) 0.461
- 1950년 : 57승 96패 (8/8) 0.372
- 1951년 : 64승 90패 (7/8) 0.416
- 1952년 : 42승 112패 (8/8) 0.273
- 1953년 : 50승 104패 (8/8) 0.325

피츠버그 파이어리츠는 포스트시즌은 고사하고 필라델피아 필리스와 탈꼴지 싸움을 하기 바쁜 그런 팀이었다. 이런 팀에서 좋은 성적을 내더라도 주목받기 힘든 것은 당연지사였다. 게다가 30살에 척추에 부상까지 생기고 말았다. 그가 겪었던 병은 좌골신경통으로 당시의 의료 기술로는 치료가 한계가 있었던 상황. 하지만 그는 고통을 감내하면서 3년간의 프로 생활을 더 지속했다.

[이후의 3년간 성적]
- 1953년 : 157안타 35홈런 .279 .391 .512
- 1954년 : 159안타 22홈런 .285 .371 .487
- 1955년 : 78안타 18홈런 .243 .367 .452

결국 32살의 나이에 더 이상 프로생활을 하기 힘들 것이라는 진단이 나왔다. 프로생활은 고사하고 일상생활에까지 지장이 올 정도의 상황. 의사는 당장 수술에 들어가야 한다고 경고하였고, 이마저도 성공 확률은 50% 였다. 결국 그는 프로생활을 포기하고 수술을 하기로 결정한다. 그의 프로생활은 고작 10년이었다.

1472경기 5205타수 1451안타 369홈런 971득점 1015타점 22도루 .279 .398 .548

 - 은퇴 후

그가 은퇴하고 그의 등번호인 4번은 피츠버그 파이리츠에서 곧바로 영구결번화되었다. 명예의 전당은 다소 힘들게 들어갔는데 그의 누적스텟을 감안한다면 사실 들어간 것이 놀라울 정도이다. 그의 연속 홈런왕 기록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입성이다.

[명예의 전당 득표율]
1960년 : 1.1%
1962년 : 3.1%
1964년 : 15.4%
1966년 : 24.5%
1968년 : 41.7%
1969년 : 40.3%
1970년 : 55.7%
1971년 : 58.9%
1972년 : 59.3%
1973년 : 61.8%
1974년 : 58.9%
1975년 : 75.4%


그는 수술과 재활을 끝내고 뉴욕 메츠의 방송 해설위원으로 일을 시작했다. 카이너의 코너(Kiner's Korner)는 팬들과 선수들에게 큰 사랑을 받았다. 이는 1985년까지 계속되었으며 이후 랄프 카이너는 조용히 자택에서 자신의 여가를 즐겼다. 그리고 2014년 2월, 91세의 나이로 자택에서 조용히 임종을 맞이했다.



"윌리엄스, 디마지오, 뮤지얼, 그리고 카이너. 이들은 자신들이 활동했던 기간에 가장 뛰어난 외야수들이었다." - 빌 제임스

"카이너는 단 한번의 스윙으로 당신의 리드를 날려버릴 수 있다." - 워렌 스판

"내셔널리그 역사상 가장 위대한 슬러거 중 한 명이었으며, 데뷔 첫 7년 연속 리그 홈런왕에 올랐다. 피츠버그 파이리츠 타선의 핵심으로 그가 보여준 파워와 인내심은 20세기 올스타 멤버로 만들어줬고, 시대를 앞서간 선수로 기억되고 있다." - 버드 셀리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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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기록을 찾다가 나온 선수여서 한 번 칼럼을 써봤습니다. 약팀에 주목도 제대로 받지 못한 강타자이기에 많은 분들이 알아주셨으면 하는 바람에 올려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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웰시코기
15/02/22 04:14
수정 아이콘
버드 셀리그가 누군가 3초 생각했네요. 버드 셀릭 전 커미셔너군요.
물맛이좋아요
15/02/22 12:06
수정 아이콘
이런 선수가 있는지 몰랐네요.

이름은 어디선가 들어본 것 같습니다만..

좋은 글 감사합니다.
지금뭐하고있니
15/02/22 18:43
수정 아이콘
오 잘 봤습니다 카이너 이름은 여러번들었는데...꽤 mlb빠라고 생각했는데 오는 배워갑니다. 흐흐
블랙탄_진도
15/02/22 23:08
수정 아이콘
좋은글 감사합니다.

오늘도 배워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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